졸업식, 생일, 운동회… 어린 시절 경사스러운 날이면 어김없이 먹던 최고의 별식이 지금은 가장 만만한 배달 메뉴가 되어 하루 600만 그릇씩 팔려나가는 '서민 음식' 자장면. 까만 춘장이 세상살이의 기쁨과 고달픔을 대변해주기라도 하는 듯 우리는 여전히 자장면에 집착한다. 그래서 가끔씩은 꼭 '먹어줘야' 삶의 원동력을 되찾는 듯하다.
◆ 한국 자장면의 역사를 쓰다
산동지방 노동자들의 새참 '작장면' 자장면은 장을 튀긴다는 의미의 중국어 '작장면(炸*면)'에서 유래한 일종의 변종 중식이다. 1800년대 후반~1900년대 초반 무렵, 현재의 인천 지역 부둣가는 청나라와의 선박무역이 한창이었고 배에서 내리고 싣는 엄청난 양의 물건을 나르기 위해 고용된 수많은 짐꾼들은 대부분은 산둥 지방 출신이었다. 짐꾼들은 일하는 중 허기를 달래기 위해 별다른 재료 없이도 즉석에서 간편하게 만들 수 있는 고향의 메뉴인 작장면을 먹었다. 춘장만 미리 준비해두면 즉석에서 밀가루를 반죽해 수타면을 만들어 비벼먹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부둣가를 돌아다니며 노동자들을 상대로 작장면을 파는 손수레 노점상이 하나 둘 생기며 인기를 끌자 자장면 가게들이 속속 생기게 된다. 흔히 자장면의 원조를 얘기할 때 인천의 '공화춘'을 거론하지만 정작 '공화춘' 초기 메뉴에 자장면은 없었다. 자장면은 태생부터 서민의 음식이었기 때문에 상류층이 드나들던 고급 '청요리집'에서는 판매되지 않았던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자장면의 인기가 높아지자 고급 청요리집에서도 자장면을 메뉴에 올리기 시작했다.
달콤한 맛으로 입맛을 사로잡은 '사자표 춘장' 중국의 작장면이나 초기의 자장면은 지금의 자장면 맛과는 사뭇 달랐다. 자장면을 만드는 데 쓰이는 춘장은 우리의 장처럼 밀가루와 콩을 발효 숙성시켜 만드는 장으로 산둥 지방에서 파를 즐겨 찍어 먹던 '총장'에서 유래했다.
본래 중국의 총장은 한국화된 지금의 춘장과 달리 단맛이 거의 없고 오랜 보관하기 위해 소금 함량을 높여 짠맛을 내며 옅은 갈색을 띠고 오래 숙성될수록 검은색에 가까워졌다. 때문에 이 춘장을 사용한 초기의 자장면은 지금보다 단맛이 적고 장 자체가 짜서 소스를 적게 넣어 조금 더 빡빡했다. 그러다 1948년 산둥성 출신 화교 1세대인 故왕송산 씨가 (주)영화식품을 설립하고 춘장을 판매하기 시작했는데 경쟁업체가 '좋은 춘장은 오랜 시간 발효 숙성시켜 검은색을 띤다' 는 광고를 시작하자 그에 대한 반격으로 본래의 춘장에 캐러멜소스를 넣어 한국인이 선호하는 단맛에 검은색까지 띠는 '사자표 춘장'을 내놓았다. 기존의 단맛과는 차원이 다른 중독성 높은 캐러멜이 가미된 자장면은 단맛이 귀했던 시절 전율에 가까운 '신세계의 맛'이었다. 장을 직접 담글 필요가 없어 간편하기도 하거니와 손님들이 찾자 점차 자장면을 판매하는 거의 모든 업소에서는 '사자표 춘장'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우리가 기억하는 옛날 자장면의 맛은 바로 이 '사자표 춘장'의 맛이다. 후에 많은 대기업이 춘장 사업에 진출했지만 한 번 길들여진 입맛을 바꾸지 못해 모두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놀랍게도 지금까지 자장면 판매 업소의 90% 이상이 '사자표 춘장'을 사용하고 있다.
중국집마다 차별화된 자장면 개발에 총력 원래 자장면에 들어가는 채소는 정해져 있지 않았다. 지금이야 비닐하우스 재배로 어떤 채소도 사계절 내내 만날 수 있지만 옛날에는 철따라 자장면에 들어가는 채소의 종류가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채소가 귀한 겨울에는 무말랭이 등이 즐겨 사용되었으며 흔히들 '옛날 자장면'이라고 하면 감자를 떠올리는 것은 당시 감자 가격이 가장 저렴해 많은 가게에서 즐겨 사용했기 때문이다.
감자보다 고구마 시세가 더 저렴할 때는 감자 대신 고구마를 사용하기도 했다. 자장면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중국집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자 주인들은 자기 가게만의 특화된 메뉴로 경쟁력을 가지려 했다. 그렇게 나온 메뉴가 고기만 볶아 얹은 유니자장, 재료를 길쭉하게 썰은 유산슬자장, 국물에 전분을 많이 넣어 만든 울자장, 물을 적게 넣고 빡빡하게 한 번 더 볶은 간자장 등이다.
희로애락을 함께해 온 한국인의 소울 푸드 한 시인은 어린 시절 고향 시골집에서 벗어나 읍내에서 처음으로 자장면을 먹었을 때 그 황홀한 맛에 '복종의 힘을 알아 버렸다'고 회고했다. 프로스트가 자신의 소설 <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 에서 장장 몇 페이지를 할애해 마들렌을 처음 먹던 순간을 묘사한 것을 한국의 작가가 쓴다면 마들렌을 대체할 음식은 누가 뭐래도 자장면이 될 것이다.
옛 시절 장이 서는 날을 학수고대하다 먹던 꿀맛 같던 자장면, 운동회 날이면 운동장으로 '나무가방' 에 배달돼 오던 자장면, 학교를 졸업하는 날에는 온 가족이 정장을 입고 동네 중국집에 가서 먹던 자장면, 생애 처음 마련한 집으로 이사하는 날 하루 종일 짐을 나르고 난 뒤 먹는 자장면은 왠지 울컥하고 눈물이 나올 만큼 달디 단 맛이다. 자장면에는 소박한 삶을 기쁘게 하는 특별한 힘이 있다. 특별한 날이 아닌 데도 친구들과 자장면을 시켜먹으면 그 자체로 즐거워지고 아무리 비싼 중식 코스요리를 먹어도 자장면이 없으면 서운하다. '
중식' 이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지만 100여 년이 넘는 기간 동안 서민의 희로애락을 담아 온 자장면은 이제 더 이상 중국음식이 아닌 한국인의 '소울 푸드'다. 오늘도 하루 600만 명의 사람들은 자장면 한 그릇을 먹고 난 뒤 든든함과 삶의 생기를 되찾는다.
◆ 자장면의 조리법 변천사
공화춘에서 주방장을 하던 할아버지로부터 3대째 가업을 이어받아 인천 차이나타운에서 '태화원' '자금성' 등을 운영하는 화교 3세대 손덕준 씨는 옛날의 자장면을 회상하며 가장 크게 달라진 점은 '자장면의 양'이라고 말한다. 옛 시절에는 어떤 음식이건 '푸짐한 양' 이 미덕이었다. 아무리 맛이 좋아도 양이 충분하지 않으면 손님들이 외면했기에 지금과 비교할 때 한 그릇의 양이 거의 두 배에 달할 정도였다.
게다가 자장면은 자주 접할 수 없는 별식 중의 별식이었으므로 한 번 먹을 때 잔뜩 먹으려는 생각에 거의 모든 이들이 '곱배기'를 주문하곤 했다. 자장면 맛이 예전만 못하다는 이들이 많은데, 재료값 때문에 질이 낮은 식재료를 사용하는 집을 제외하면 맛 자체는 사람들의 입맛에 맞게 점점 변화하고 발전했다는 것이 그의 견해다.
그의 가게에는 '옛 자장면 맛'이 그리워 일부러 찾아온 나이 지긋한 손님들이 많다. 대부분 오랜 시간 축적된 노하우와 좋은 재료로 만든 자장면에 만족해서 돌아가는데 가끔 '옛 맛이 그리워 왔는데 어째 그 맛과 다르다'고 묻는 이들이 있다. 그런 이들에게 손덕준 씨는 '어르신은 옛 자장면 맛이 그리운 것이 아니라 추억이 그리운 것입니다'라고 화답한다.
돼지비계에서 식용유로 예전에는 자장면을 볶을 때 식용유 대신 돼지비계 덩어리를 녹여 사용했다. 라드라고도 불리는 돼지비계로 기름을 내 자장면을 볶으면 특유의 풍미가 가해져 더욱 고소한 맛이 났다. 팬에 기름을 내고 남은 기름 빠진 비곗살 부분은 다져서 만두로 만들기도 했는데, 그 맛 또한 일품이었다.
하지만 80년대 후반 식품에 공업용 쇠고기 기름을 사용했다는 '쇼트닝 파동' 이후 '동물성 지방은 몸에 해로운 것' 이라는 오해가 생겨 식용유로 대체되어 사용되고 있다. 지금은 어디서나 식용유를 사용하지만 건더기로 들어가는 돼지고기에서 나는 풍미로 그 맛이 유지되고 있다.
자장면 고명의 최고봉은 삶은 달걀 자장면의 재료와 고명은 세월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바뀌었다. 달걀이 귀하던 시절에는 자장면에 올라간 달걀 하나가 자장면을 더욱 특별한 음식으로 만들어 주었다. 보통은 삶은 달걀 반쪽을 올리는 집이 많았지만 경상도 지역에서는 간자장을 시키면 계란프라이가 올라가는 것이 정석처럼 여겨지기도 했고 메추리알을 올려주는 곳도 있었다. 하지만 생활수준이 올라가고 영양 상태가 좋아지면서 달걀이 더 이상 귀한 대접을 받지 못하자 자장면에서도 달걀 고명이 서서히 사라지게 되었다. 이에 2000년대 초반에는 한 심야라디오 프로그램의 청취자들을 주축으로 사라진 달걀 고명을 되찾자는 '자장면 달걀회복 전 국민 운동본부'가 인터넷에 개설되어 전국적으로 달걀을 올린 중국집과 달걀 없는 집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는 코믹한 해프닝이 벌어지기도 했다.
삼선자장에서 사천자장까지, 자장면 가격이 잘 오르지 않는 이유 자장면은 생활물가관리 품목 중 하나로 국가에서 가격을 관리하기 때문에 아무리 고급 중국집이라고 해도 가격을 높게 받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중국집에서는 일반 자장면과는 별개로 고급 자장면 메뉴를 개발했다. 그 결과 나온 것이 해삼과 새우, 갑오징어 등 고급 해산물이 들어간 삼선자장이다. 88년 서울올림픽과 함께 특급호텔이 늘기 시작하자 이때 호텔마다 들어선 고급 중식당에 홍콩에서 주방장을 모셔오면서 한 차례 중식의 고급화가 이뤄졌고, 이때 삼선자장이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근래에는 삼선자장 외에도 매콤한 맛으로 한국인의 입에 잘 맞는 사천식 자장, 면까지 팬에서 함께 볶아 넓적한 접시에 담아 요리처럼 인식되는 쟁반자장 등 고급화된 다양한 메뉴가 선보이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중국집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식사 메뉴는 보통 자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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