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은 봄을 기다리지만 아직까지 추위가 기승을 부리는 2월이다. 몸이 추우면 따뜻한 국물이 생각나게 마련인데, 우리나라처럼 국물이나 전골 요리가 없는 이탈리아 사람들은 날씨가 추우면 어떤 음식을 떠올릴까? 이달에는 배우 김호진과 샤이야99의 새로운 셰프, 이현지씨와 함께 이탈리아의 따뜻한 요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행복한 테이블을 지금 공개한다.
새로운 파트너가 제안하는 따뜻한 요리
2014년도 벌써 한 달이나 지났다. 올해는 배우로서 대중에게 좀 더 다가가고 싶은 마음이 생겼다. 그래서 오너 셰프로 경영하던 샤이야99를 이탤리언 레스토랑으로 변화를 주기로 결심했다. 우선 나의 빈자리를 채워줄 이탤리언 요리 셰프가 필요했다. 젊고 감각 있는 친구를 물색하던 중 이탈리아에서 이제 갓 요리 공부를 마치고 돌아온 이현지 셰프를 알게 됐다. 그녀는 우리나라에서 한식을 공부하고 두바이에서 요리사로 일하다가 이탈리아에서 전통 현지 음식을 공부하고 온 재원이다. 한식에 대한 지식도 해박해 전통 이탤리언 요리에서 벗어나지 않는 선에서 우리나라의 식재료를 이용한 레시피를 개발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다. 몇 번의 미팅을 통해 파스타와 피자로 일관된 국내 이탤리언 음식의 편협함을 깨고 다양성을 알리고 싶은 나의 바람을 전했는데, 그녀의 음식에 대한 넘치는 아이디어는 나의 욕구를 채워줄 수 있겠다는 느낌이 왔다. 그렇게 그녀와 난 파트너가 되기로 결심했다.
「레이디경향」 촬영을 앞두고 그녀에게 연락을 취했다. 추운 날씨에 몸은 물론 마음까지 움츠러드는 요즘, 따뜻한 이탤리언 요리를 맛보고 싶었다. '몸 녹이는 따뜻한 이탤리언 요리'라는 주제로 그녀에게 몇 가지 요리를 만들어줄 것을 제안했고, 그녀는 나에게 3가지 요리를 선사했다.
"이탈리아의 가정식으로 쇠고기 스튜인 페포조(Peposo)와 국물이 자작한 채소수프인
미네스트로네(Minestrone), 홍합찜인 주파 디 코제(Zuppa di cozze)를 준비해봤어요."
페포조는 쇠고기를 와인에 조린 음식인데 그녀는 콩퓨레를 곁들여 준비했다. 고기를 퓨레에 찍어 한 입 베어 무니 부드러운 식감이 입 안을 녹이는 느낌이 들었다. 와인에 조린 쇠소기 페포조는 향긋한 와인 향의 풍미와 부드러운 육질이 한데 어우러진 이탈리아의 메인 요리 중 하나다. 투스카니 지역의 요리인 페포조는 보통 그 지방에서 나는 키안티 와인에 통후추와 마늘을 넣어 조리하는데, 이탈리아 사람들이 겨울에 따뜻한 음식이 생각날 때 즐기는 요리다. 다양한 채소와 토마토가 깊은 맛을 내는 미네스트로네는 따뜻한 국물이 있어 추운 몸을 녹일 뿐 아니라 바게트와 함께 먹어 속이 든든해지는 느낌이다. 사실 홍합찜은 내가 직접 주문한 요리인데, 이탈리아는 지중해성 기후라 사시사철 홍합이 나는 반면 우리나라는 찬바람이 불 때 홍합이 제일 맛있기 때문에 지금 먹기에 딱 좋은 이탤리언 요리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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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 color=#156200>김호진식 요리로 재해석하다
페포조는 와인에 조린 사태 요리로 간장에 조린 우리나라 장조림과 비교해 짠맛이 거의 없을 뿐 매우 비슷하다. 삶은 감자나 삶은 콩에 올리브유와 소금, 후춧가루를 넣고 농도를 내어 퓨레를 만든 뒤 페포조와 함께 내면 고급 레스토랑에서 맛보는 스테이크를 먹는 기분이 들 것이다. 또 안심이나 양지, 우둔살을 이용해 장조림을 만들 때 간장과 와인을 반씩 섞어 조리면 페포조의 와인 향이 느껴질 뿐 아니라 가족 밑반찬으로도 손색이 없다.
평소 파티나 술자리때 즐겨 만들어 먹는 홍합찜은 나의 페이버릿 푸드다. 올리브유, 마늘, 페페론치노, 양파를 넣고 볶다가 손질한 홍합을 넣고 드라이한 화이트와인을 부어 끓이면 맛있는 이탤리언식 홍합찜을 즐길 수 있다. 홍합찜을 맛있게 만드는 비법은 화이트와인을 넣는 타이밍이다. 홍합이 너무 익으면 질겨지기 때문에 홍합 입이 한두 개 열릴 때 와인을 넣고 살짝만 끓이면 부드러운 홍합찜을 맛볼 수 있다. 또 남은 국물에 삶은 파스타를 넣고 볶으면 아이와 함께 즐길 수 있는 스파게티도 뚝딱 만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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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토마토페이스트는 취향대로 넣을 것. 토마토페이스트 없이 토마토만으로도 향을 낼 수 있다. 2 채소가 무를 때까지 볶다가 닭 육수를 붓는다. 3 떡을 넣고 오래 끓이면 모두 녹아 사라지므로 인절미를 한 입 크기로 썰어 넣은 뒤 바로 불을 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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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우리나라의 국과 일본의 전골, 중국의 훠궈 등 몇몇 음식만 팔팔 끓인 상태에서 식탁에 올릴 뿐 뜨거운 음식을 즐기는 나라는 거의 없다. 이탈리아도 수프를 바글바글 끓이지만 뜨겁지 않게 식혀 먹는다. 미네스트로네도 따뜻하게 먹는 수프로 보통 건더기가 없는 수프에 익숙한 것과 달리 각종 채소와 곡류까지 한 번에 맛볼 수 있는 음식이다. 여러 가지 채소와 토마토페이스트, 콩을 넣어 푹 끓이는 채소수프로 쌀쌀한 날씨에 든든한 한 끼 식사가 될 뿐만 아니라 저칼로리 식품이라 다이어트식으로도 좋다. 미네스트로네의 매력은 어떤 채소든 가리지 않고 활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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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계절을 무색하게 하는 진도의 대파 밭. 제철 대파는 맛이 달고 향이 좋아 그대로 구워 먹어도 좋고 달걀과 함께 전으로 부쳐 먹어도 맛있다. 채소수프를 만들 때 제철 대파도 잊지 말고 넣을 것. 4 갓 뽑은 가래떡을 채소수프 마지막 단계에 넣으면 부드럽게 늘어지는 식감이 모차렐라치즈와 비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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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가정에서도 집에 있는 채소를 한데 모아 끓이는데, 채소의 종류가 다양할수록 깊은 맛이 난다. 어제 먹다 남은 배추는 물론 시래기, 근대, 봄동 등 어떤 채소를 넣어도 상관없다. 여기에 양파와
셀러리, 콩, 토마토, 당근만 잊지 말고 넣자. 재료가 물러질 때까지 30~40분간 끓이면 채소수프인 미네스트로네를 만들 수 있다. 서양 수프다 보니 셀러리가 없으면 특유의 향이 사라지므로 꼭 넣고, 생략해도 괜찮지만 이왕이면 월계수 잎이나 타임과 같은 향신료도 챙기길 바란다. 토마토는 기호에 맞게 양을 조절하고, 진한 토마토수프 맛을 원한다면 토마토페이스트를 넣으면 된다. 고춧가루나 페페론치노를 넣으면 한국인 입맛에 맞는 칼칼한 채소수프를 맛볼 수 있다. 건더기와 수프를 함께 떠먹는 미네스트로네는 그 자체만으로도 맛있지만 빵을 적셔 먹으면 더욱 든든하다. 여기에 빵 대신 인절미나 굳기 전의 가래떡을 넣으면 떡의 쫄깃한 식감 덕분에 치즈를 넣은 듯한 이색적인 맛을 낼 수 있다. 남은 채소수프에 삶은 파스타나 마카로니를 넣으면 미네스트로네 리볼리타가 완성되므로 참고하자.
흔히 오늘은 무얼 해 먹을까 고민하게 마련인데, 이렇게 이탤리언 요리 한두 가지만 알면 색다른 음식을 맛있게 먹을 수 있다. 정해진 레시피가 아닌 내 방식대로 음식을 만드는 것, 예상치 못한 행운을 만난 것 이상으로 행복을 느낄 수 있다.
김호진의 행복 요리 제안
인절미를 곁들인 채소수프
재료
시래기 1줄, 근대 잎 15장, 봄동 1단, 마늘 2톨, 양파 1/2개, 셀러리 2대, 당근·토마토 1개씩, 대파 1대, 닭 육수 1.5L, 불린 콩 250g, 토마토페이스트 3큰술, 월계수 잎 3장, 소금·후춧가루 약간씩, 올리브유 적당량, 인절미 200g
만들기
1 셀러리는 0.5cm 폭으로 썰고 당근과 양파는 반달 모양으로 썬 뒤 슬라이스한다. 2 시래기와 근대 잎, 봄동은 잘게 썰고 대파는 어슷썬다. 3 토마토는 4등분해 1cm 두께로 슬라이스한다. 4 달군 팬에 올리브유를 두르고 마늘을 으깨 넣고 볶아 향이 배어나게 한다. 5 ④에 ①의 셀러리와 당근, 양파 순으로 넣어 달달 볶는다. 6 ⑤에 ②의 시래기와 근대 잎, 봄동, 대파를 넣고 볶다가 ③의 토마토와 토마토페이스트, 닭 육수를 넣어 약 30분간 끓인다. 7 믹서에 불린 콩 150g과 ⑥의 국물을 한 국자 넣고 갈아 콩퓨레를 만든다. 8 ⑥에 ⑦의 콩퓨레를 조금씩 저어가며 넣어 농도를 맞추고 10분 정도 더 끓인다. 9 ⑧에 남은 불린 콩을 넣고 5분 정도 더 끓이다가 월계수 잎을 넣고 한소끔 끓인다. 10 ⑨에 소금과 후춧가루로 간한 뒤 인절미를 한 입 크기로 썰어 넣고 불을 끈다.
<■기획 / 이서연 기자 ■글 & 요리 / 김호진 ■사진 / 원상희 ■제품 협찬 /
소니코리아(1588-0911) ■장소 협찬 / 르크루제 청담부띠끄(02-3444-4841) ■헤어 & 메이크업 / 이순철,·지미(순수 청담설레임점, 02-518-6221), 유리·희유(아름다운 규니영, 02-3443-6880) ■스타일리스트 / 문진아>